Today : 2024-10-24 Thursday
홈 현재 경제노트 가족은 388,872명 입니다.
당신은 14,355,396번째 방문객 입니다.
경제노트 서가 가족이 쓰는 노트 책밑줄긋기 독서모임
로그인 |
회원가입없이 경제노트를 이메일로 받고 싶으신 분은 이름과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개인정보 수집및 이용 안내에 동의
(확인하기)
뉴스레터 수정/해지
추천인
이름
메일
추천받는 분
이름
메일
인사말
개인정보 수집및 이용 안내에 동의
(확인하기)
한번에여러명추천하기
생활문화 문학 일반글
료마가 간다1~10, 시바료타로
입력 2011-12-13 오전 11:51:30
트위터에 담기 스크랩하기 내모임에담기 이메일추천하기 인쇄하기
일본역사에게 가장 스팩타클한 부분이 2곳이 있다고 합니다.(일본인에게 물어보니 그렇다네요.)
 
처음이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의 좋지 않은 기억입니다만
 
오다노부 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로이어지는 16세기 전국시대 이고요(대망)
 두번째가 사카모토 료마가 활동한 막부말~메이지 유신의 19세기 후반 입니다.
우리나라는 대원군의 쇄국 정책으로 문을 틀어 막고 있을때지요.
 
' 료마가 간다'는
 
막부 말기에 활동한 사카모토 료마의 일대기입니다.
 
막부 말기 미국의 페리가 쿠로후네(흑선)를 카고와 개항을 요구하며
미국과의 불평등 조약은 그간 일본의 다이묘를 지배해왔던 막부(도쿠가와 가문)의 무능력함으로
막부(도쿠가와 가문)를 타도하고 근왕(천황)을 받들어 외국 오랑케를 배척하자는 근왕양이론
이 하급무사들 사이에 퍼지게 되어 막부 후기의 정세는 존왕양이론 vs  바쿠후* 옹호론으로 나뉘어
대립하게 됩니다.
 
료마의 십대~20대 초반은 에도에서 검술수업을 하며 정세를 익히며 존왕양이론에 영향을 받는 시기입니다.
정세는 앞에서 설명한것과 같으나 일본의 막부시대는 각 지역의 다이묘*가 지배 하고 있고 그 다이묘의 쇼군인
도쿠가와 가문이 대표로서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 었습니다.
300여개의 한중 사쓰마, 죠슈 도사한이란는 유력한 3한에서 존왕양이론이 일어나 한* 내부의 정세역시 2가지로 나뉘어
혼란이 계속되는 시기입니다. 각 한은 또 한대로 서로 믿지 못하고 대립이 계속됩니다.
 
그 당시 일본의 지사(양이론을 하는 사람들을 일컬음)는 무력으로 바쿠후를 타도 하고 천황을 세워 양이론(쇄국) 지향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바쿠후 타도 이후의 국가론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지요. 각 한이 자신의 나라이기에 바쿠후 대신 자신의 한주를 올린다는 생각 밖에 없었을겁니다.
 
그 수많은 지사 중 사카모토 료마’는 전혀 다른 거시적은 시각을 가진 단 1인 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원래는 양의론자로 바쿠후 옹호론을 핀 가쓰 가이슈’ 를 암살하려고도 하지만 가쓰에게 설득당해 개국론으로 바뀌게 됩니다. 단순히 외국을 배척해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문물을 받아 들여 일본이라는 나라를 외국과 당당히 싸울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위한 것이다라는 것이지요.
 
자신은 바다와 배를 좋아해 세계를 상대로 상사를 설립해 전세계와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바쿠후 체제의 현 정치 권력은 도쿠가와 가문에서 천왕으로 이양이 되어야 하고, 또한 300년간 지속되어 왔던 한체제 역시 바꾸어 외국의 정체를 일본에 반영해야 만 되는것이지요. 자신의 사업은 사업대로 진행하고 바쿠후의 권력 붕괴는 작업은 작업대로 진행합니다.
 
여기서 이 인물에 대한 감상은 바쿠후를 타도하기 위한 방법으로 계속 추진해 왔던 무력봉기를 일순간에 접고 다이세이 봉환’ 이라는 도쿠가와 가문 스스로 권력을 내려 놓도록 자신의 정책을 바꾸고 또한 다른 한 (사쓰마, 죠슈등 )을 설득해
결국 권력자가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게 만들게 됩니다.
(요즘 중동에서 그리고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나라도 권력에 대한 것은 자유롭지 못하지요. )
그리고 료마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국가 정체기본 틀은 메이지 정부에서 거의 다 채용하게 됩니다.
 
메이지 유신은 사카모토 료마와 도쿠가와 가문의 희생으로 세워진 정체가 되는 것이지요.
다이세이 봉환이 마무리 된후 료마는 바로 암살당하게 되어 자신의 꿈은 볼 수 없게 되었으나 그 당시 료마가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의 일본과는 조금 다른 상태가 되지 않았을까 하네요.
 
그 당시 정세중 각 한과의 대립, 료마의 닷판등은 특별히 쓰지 않았습니다.
내용도 재미있고, 지바료타로의 글 솜씨는 책에 몰입하는데 전혀 문제 없네요. 2달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상
  예경모 수원시 모임
예병일의경제노트 추천정보
 
공유하기
덧글(0) 스크랩(1) 이 노트 글을...
예병일의경제노트 노트지기 덧글
덧글 달기
덧글달기
이름     비밀번호
엮인글(트랙백) 쓰기 주소 : http://note.econote.co.kr/tb/shoot04/157429    
암호화된 이메일 노리는 APT공격 징후 발견!
인터벌 트레이닝과 업무능력
노트 목록으로 이동
필자 예병일 소개 경제노트 소개 1:1문의하기 개인정보 취급방침
예병일의 경제노트    대표자: 예병일    개인정보 관리책임자: 조영동 팀장    전화: 02-566-7616   팩스: 02-566-7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