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련에서 사제지간의 도리는 무엇인지요?
믿음이다.
수련 방법은 경우에 따라 잘못 전달될 수도 있으나 그것은 시정이 가능하다.
수련 진도에 관한 부분도 수정이 가능하며
방향도 정정이 가능하다.
모든 가능함은 믿음에서 나온다.
허나 믿음이 상실된 상태에서는
어떤 방법도 사용이 불가하며
사용해 봤자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선별하므로
그 효과는 역으로 날 수도 있는 것이다.
분별이 필요 없다 함은
이런 경우에 믿음으로 따라가면
결국 끝까지 갈 수 있는 때문이요,
믿음이 사라질 시점에서는
특히 수련을 중지함이 마땅하다.
긴가민가하는 수련은 수련의 퇴보이며
더 그런 상태로 있다가는
수련을 하지 않은 상태보다 더 폐허가 될 수도 있다.
시작도 안한 상태보다 더 못한 경우가 되어 버리는 까닭이다.
수련은 믿음으로 따라야 한다.' [본성과의대화2, 33]-[한국의선인들4, 162]
사제지간의 도리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이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옳은 것 같으면 따르고, 아닌 것 같으면 안따르는 것이 아니라,
따르기로 했으면 그냥 따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수련방법이 잘못 전달될 수도 있고,
수련진도가 잘못될 수도 있고,
방향이 잘못될 수도 있지만,
다 수정이 가능합니다.
그 가능하게 하는 힘은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공부시키고,
내일은 저렇게 공부시키더라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또한 분별할 필요가 없이
믿음으로 따라가면 결국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상실된 상태에서는
어떤 방법도 사용이 불가하며
사용해봤자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선별하므로,
효과가 역으로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사라질 시점에서는
수련을 중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의 수련은 퇴보이며, 더 폐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상실된 상태에서,
제자가 선별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일단 A라는 코스를 간 다음에 B라는 코스를 거쳐야
C코스에서 풀면서 마무리하는 과정이라고 할 경우에,
받아들이는 사람이 A는 마음에 들어 따라가고,
B는 마음에 들지 않아 빼먹고,
C로 들어설 경우에, 그 커리큘럼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걸 알지도 못하는 수준의 제자에게 다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니,
믿음으로 따라가던가,
아니면 그만두던가 하는 것이 맞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련은 믿음으로 따라야 합니다.
또한,
믿음이란,
상대방을 있는 그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므로,
스승이 옳던 그르든 내가 따르기로 했으면 따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또한 그로 인하여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것까지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따르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 가다가 내가 원한 것은 이런게 아니었다고 불평하거나 실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진정한 믿음은 혹 가다가 내가 원하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그것까지 받아들이겠다는 믿음을 가진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선택은 자신의 선택이므로,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지,
후에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며,
이 과정을 통해서 100%의 믿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스승이 잘못 이끌었더라도,
내가 참된 믿음을 가지고 시작했고, 끝까지 완수했고, 그에 따르는 결과도 다 받아들이고 책임을 졌다면, 그 자체로 공부가 된 것입니다.
100% 믿음을 이룬 셈이 되니까요.
또한 100% 믿음이 곧 우리가 얻어야 할 결과이기도 하니까요...
따라서,
스승이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가느냐,
어떤 믿음으로 가는가에 수련은 달려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마음을 먹고, 그 마음을 지켜가는가에 따라,
그 수련의 결과가 달려있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수련은 믿음으로 따라야 합니다.
스승이 믿을만해서 믿고, 믿을만 하지 않아서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기로 해서 믿고,
내가 믿지 않기로 해서 안 믿는 것 뿐입니다.
결국은 나의 결정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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