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물의 이와 같이 보편적인 반대 관계에는 또한 항상 진행되고 있는 두 가지 생성 과정, 곧 갑에서 을로, 그리고 을에서 갑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 있지 않을까? 보다 큰 것과 보다 작은 것이 있는 경우에는 역시 증가와 감소라는 생성 과정이 있어서 생장하는 것을 증가라 하고 쇠퇴하는 것을 감소하고 하는 것이겠지?”
“네”라고 케베스는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분할과 결합, 냉각과 가열 등 기타의 많은 과정이 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갑이 을로 되고 을이 갑으로 되는 변천을 내포하고 있네. 그리고 일일이 말로 표현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러한 과정이 필연적으로 모든 반대물을 지배하고 있네. 반대물은 사실상 반대물로부터 나오고, 갑으로부터 을이 되는 변천 과정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습니다.”라고 케베스는 대답했습니다.
“자 그러면, 잠자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의 반대인 것처럼 삶의 반대물도 있지 않을까?”
케베스는 말했습니다. “있습니다.”
“그러면 그게 무엇인가?”
“죽음입니다”라고 케베스는 대답했습니다.
“자, 나는 자네에게 말한 두 쌍의 반대물 중의 하나와 그 생성 과정을 분석할 테니, 자네는 다른 하나를 나에게 설명해 주게. 두 쌍의 반대물 중의 하나란 잠자는 것과 깨어 있는 것을 말하네. 잠자는 상태는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잠자는 상태가 생기네. 생성 과정은 하나는 잠드는 것이며, 또 하나는 깨어나는 것이지. 옳다고 생각하나?”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면 같은 방식으로 자네가 삶과 죽음을 나에게 설명해 주게.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닌가?”
“네.”
“그리고 삶과 죽음은 각기 반대물로부터 생기겠지?”
“네.”
“산 것으로부터 무엇이 생길까?”
“죽음입니다.”
“그리고 죽은 것으로부터는?”
“오직 한가지 대답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산 것이라고.”
“따라서 여기에 죽은 것이 살아 있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것은 죽은 것으로부터 생긴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새로운 길이 있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죽은 자의 영혼은 어떤 곳에 있다가 거기서 되살아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네.” 파이돈 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