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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문학 일반글
핼리혜성이 사라진 까닭은?
입력 2012-02-01 오후 12: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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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사람들을 잡아당기는 힘이 있다. 이놈은 어쩌다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떤 빌미가 주어지기만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그 빌미는 냄새일 수도 있다. 방금 인쇄한 신문지에서 나는 잉크 냄새나 찬바람 부는 거리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고구마나 밤을 굽는 냄새도 그럴지다.(옛날 책을 들춰보고 적은 것임을 용서하기 바란다.) 사람들은 좋았던 시절을 추억하는 일에 목숨이라도 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추억이 현실에서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것이라면, 특히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는 더더욱.

좋았던 시절, 바다에는 펄펄 뛰는 생선들로 그득했고, 육지에는 싱싱한 채소나 달콤한 과일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사라졌다. 인류가 벌인 무지막지한 전쟁 덕분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먹는 것의 품질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인류가 평화 시대를 구가하게 되자 식탁조차 사라져버린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필수 영양소로나, 열량이나 비타민으로나 부족함이 전혀 없는 흔해빠진 알약 덩어리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식탐 욕구를 부추겼다. 자연에서 온 맛있는, 그리고 신선한 것에 대한. 당신이 어떤 걸 갈구하는 것 이상으로 자연에서 나온 음식들을 먹고 싶은 본능 말이다. 공장에서 일련번호를 달고 나온 제품이 아닌 그 어떤 것을.

그런데 나와는 글쓰는 스타일이 너무도 다른, 그래서 일 년 내내 옷 한 벌로 지내야 어울리는 한 작가가 「20세기의 추억」이란 그리 길지 않은 글을 발표했다. 그는 이 글에서 자신도 전혀 경험하지 못한 사실이란 걸 전제하면서 20세기의 식도락을 소개했다.

쫄깃쫄깃한 참치 머리에서부터 울진이나 영덕의 대게찜에 꽃게로 담근 간장게장은 어떤가. 눈이 입 속에서 그처럼 녹을 것 같다는 참치 뱃살, 씹는 맛이 일품이라는 다금바리회나 감성돔회, 서민들이 자주 찾았던 고등어구이나 갈치조림, 톡 쏘는 맛이 일품인 홍어회나 부자들의 음식인 복어회까지. 그 작가가 그때까지 썼던 다른 글과 달리 「20세기의 추억」만큼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는데, 그 이유를 굳이 캐자면 사람들의 식탐에 불을 댕긴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지 구에서는 더 이상 대자연이 제공하던 음식을 섭취하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인 세상에서, 「20세기의 추억」은 당시 사람들의 추억이 아닌 오래 전 선조들의 추억임에도 전염병처럼 마치 자신의 경험이었단 착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어떤 이들은 현세의 삶을 비관하고 자살을 택하기도 했다. 그런데 낭보가 들어온 것이다. 혹시 모를 외계인들의 침입에 대비해 개발했던 토성의 제1 위성인 타이탄의 바다에는 싱싱한 생선들이 무리지어 헤엄쳐 다닌다는 것이었다. 싱싱한 생선. 구울 때의 비릿한 연기들을 맡을 수 있다면, 날 것으로 설겅설겅 씹을 수 있다면…, 생각만으로도 사람들은 군침을 흘렸다.

그렇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는가? 원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그걸 이뤄내기 위한 어려움은 지수함수의 궤적을 그린다. 문제는 타이탄에서 지구로 생선을 실어오는 것이었다. 우주 선단의 규모가 그다지 대단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 우주 수송선을 새로 궤도에 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누군가의 제안이 신중하게 검토되었다. 타이탄에서 지구를 향해 생선 대포를 쏘자는 것이다. 당시 타이탄에는 사정거리가 30억 킬로미터에 달하는 대포들이 흔했다. 그것들 대부분이 포신의 길이가 1km 이상이었다. 제안자의 주장은 태양의 인력을 이용하면 충분히 지구까지 날려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비용도 많아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구 근처의 라그랑주 점에 얼린 생선덩어리가 도착하면, 지구 주위를 도는 우주선들이 어렵지 않게 지구까지 끌고 올 수 있으니까. 더구나 얼려진 생선들이 태양계를 여행하면서 해동되거나 부패할 염려도 없었다. 또한 타이탄의 중력권을 벗어나는 일은 지구를 벗어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쉬웠으니까. 또 별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생선들을 얼려 대포로 수송하자는 제안은 별 반대 없이 채택되었다.

물 론 그 제안이 많은 난관을 거쳐야만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다. 타이탄에서 지구를 향하면서 수많은 목성의 행성 중력에 이끌린다든지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들과 부딪힐 염려 따위는 타이탄을 떠난 생선들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6년 이상 걸린다는 사실을 참아야 한다는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6년이라니! 오늘 저녁 식탁(물론 아침에 급조했을 것이다)에 잘 익은 생선 요리를 갖다준대도 이미 타오를 대로 타오른 욕망의 불길을 사그라지지 못하게 할 텐데, 6년이라면 절망이라는 말과 바꿔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긴 시간이었다.

어쨌거나 치밀한 궤도 계산 끝에 타이탄에서 생선 대포가 발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500톤짜리 얼음덩어리를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쉬우리라. 그 소식과 함께 사람들의 조바심 역시 현실화 되었다. 그 무렵부터 현실의 권태를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들의 수가 줄기 시작했다. 대도시의 광장마다 생선의 도착일이 얼마나 남았는지 5층 건물 크기의 홀로그램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있었다. 그건 겨우 3000만 명 정도만 남은 지구 인류의 자살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했다..

지구 연방 정부는 생선들이 타이탄을 떠난 지 일주일 뒤 생선을 사기 위한 이른바 ‘생선 티켓’을 발매하였고, 이 티켓들은 곧바로 주식 시장처럼 ‘생선 티켓 시장’을 만들었다. 티켓의 가격은 연일 상한가를 치며 상대적으로 가난의 이들의 발길을 술집으로 향하게 했다. 싸구려 화학주일망정 알콜은 알콜이니까. 석 달 뒤에 타이탄에서 발사된 2차분 생선들에 대한 티켓이 시장에서 그다지 각광받지 않았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니었을까.

비록 이 글을 읽는 당신이 100년 후의 인류일지라도 ‘앞으로 1200일밖에 남지 않았어’라든가, ‘유로파 골프 투어 티켓을 1차분 생선 티켓 2장과 바꿔버렸다네’라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낯설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라그랑주 점을 목표로 생선덩어리가 날아오고 있다지만 500톤짜리 얼음덩어리를 우주 공간에서 지구로 끌고 오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경고들이 나왔음에도, 생선의 도착일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그 정도 문제쯤은 당연히,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여겼다. 우주 선단들이 생선 수송 작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인류는 TV 앞으로 몰려들었다.

호사일마일까? 어떤 혜성 전문가가 76년의 주기를 갖는 걸로 유명한 핼리라는 혜성이 지구 밖 약 2700만km 지점에서 생선덩어리와 조우하게 될 거라는 아주 불길한 전망을 수차례 내놓았음에도 사람들의 열광을 더 이상 어쩌지 못했다.

결과는 당신이 짐작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여러분들이 핼리혜성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투덜거린다 해도, 지금 우리 중 이 사실을 미안하게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바로 눈앞에서 혜성과 함께 사라져버린 생선들을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었으니. 누구나 다 알고 있던 사실, 2차분, 3차분 생선들이 지구를 향하고 있다는 당국의 발표조차 위로는커녕 사람들의 염장이나 지필뿐이었다.

생선덩어리와 핼리혜성의 충돌을 보고난 이후 많은 인류가 유명을 달리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만약 그때 그 자리에 우리와 함께 했더라면 결코 배겨내지 못했으리라. 그럼 나는 뭐냐고? 난 뭐, 그냥 생선이라면 군침을 흘리기보단 발길을 돌리는 편이니까. 그건 「20세기의 추억」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난 생선이 무슨 맛인지도 모르니 구미조차 동하지 않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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