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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의 생애(3)
입력 2012-02-01 오후 1:4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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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는 정의에 관하여도 이야기하였다.

그는 정의의 원리와 정의를 싹트게 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설명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불의의 원인을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불의를 피하고 정의가 적절하게 구현되는지 고찰하였다.

피타고라스가 얘기한 정의의 원리는 공유와 평등이었다.

공유와 평등은 육체와 영혼이 일체가 될 수 있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들이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라고 생각하였다,

이때 어떤 대상을 나의 것인 동시에 너의 것으로 부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영혼과 육체도 이런 관계가 만들어진다.

피타고라스는 관습에서 사적 소유로 여겨졌던 모든 것을 모조리 없애고,

궁극적인 소유에 있어서 공통 소유를 지향하였다.

피타고라스는 사적 소유를 소요와 혼란의 원인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피타고리안들은 모든 것들을 공유하였다.

어느 누구도 사적으로 소유하지는 않았다.

피타고라스가 이룩한 공동체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물들을

공동체의 소유로 받아들여야 했다. 만약 소유에서 불만이 생기면 공동체를 떠나야 했다.

이때 그 사람은 처음 공동체에 들어올 때 자신이 맡겼던 재산에

그가 공동체에 속해 있는 동안 늘어난 공동체의 재산에서

자기 비율을 합쳐서 돌려받았다.

피타고라스가 생각한 정의를 싹트게 하는 원인은 공동생활이었다.

일상 생활에서 평균적인 보통의 부류로부터의 소외를 느끼게 되면

그 부류에 경멸이 생기고 이것이 불의를 낳는다.

그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도 이런 소외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동물은 사람에게 친구와 마찬가지이므로 이들을 해치고 죽이거나 먹지 말도록 명하였다.

피타고라스는 동물 역시 사람과 마찬가지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보다 더 보편적인 삶에 동참하고 있다고 여겼다.

동물에 대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더 높은 단계에서 이성적인 영혼에 동참하는 사람들과 동료애를

함께 만들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는 사람들을 정의에 반하게 행동하도록 강요하는 것으로

재물에 대한 동경을 꼽았다.

다만 사람은 언제든지 필요한 소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재물에 대한 동경 대신

절약을 통해 부의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고 했다.

도시는 가정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가정에서 필요한 재물을

적절하게 비축하는 것은 도시에 있어서의 건전한 질서의 원칙이라는 점을 말했다.

실제로 피타고라스는 Alcaeus의 재산 상속인이었지만

그의 철학에 못지않게 절약을 칭찬하였다.

피타고라스는 건방짐과 사치와 법에 대한 경멸이 사람들로

하여금 부정의로 재촉한다고 했다.

그는 매일 제자들에게 불법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지도록 권고하였다.

사치는 가정과 도시로 날아 들어오는 첫 번째 악덕이고,

두 번째 악덕은 건방짐이고 세 번째는 파괴이다.

그러므로 사치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모든 가정과 도시로부터 제외하고

추방해어야 하며,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씩씩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입법은 그가 세운 또 하나의 아름다운 정의의 한 모습이었다.

평범한 정의의 법적 형태는 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는 약과 닮았다.

하지만 정의는 병이 시작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는 점에서

약과 근본부터 달랐다. 피타고라스는 이러한 입법에서

다른 곳에서 온 이들을 존중하였다. 덕분에 가장 훌륭한 입법자들은

피타고라스학파에서 배출되었다.

Charndas, the Catanea, Zaleucus와 Timaratus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며,

이들은 큰 자비심과 정치 과학으로 법을 제정하였다.

피타고라스는 또 신들의 지배가 정의를 세우는 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이라고 이해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신성이 존재한다는 것과 신이 인간을 살피고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인간이 변덕, 충동과 욕망과 같은 비이성적인 데 집착한다면

동물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신에 대한 초월적인 성찰과 신의 가르침으로부터

비이성적인 것에 대한 견제를 함으로써 질서가 자리잡는다고 하였다.

신성을 자각하고 따르면서 악마적인 본성에 대하여 깨달은 다음에는

부모의 가르침과 법에 대하여 충심으로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무정부(신성) 상태가 가장 큰 죄악인 것은

인류가 원래 아무도 그들을 지배하지 않을 때에도

구원받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피타고라스는 선조들의 관습과 법과 제도를 준수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겼다.

피타고라스는 동등하지 않고, 균형 잡히지도 않았으며,

무한하지도 않은 것과 대비하여 명확하고, 평등하며, 균형 잡힌 정의를 보여주고,

그것이 어떻게 행해져야 하는지 보여주려고 했다.

그는 기하학적인 도형을 통해 이것을 설명하였다.

서로 다른 것들과 관계에서 똑같지 않게 배치되지만 동등한 힘의 보기를 보여주는 한

도형, 유클리드의 원론 47번 정리에 등장하는 바로 직각삼각형이다.

(피타고라스의 정리 a^2+b^2=c^2에서

 세 변의 길이 a, b, c는 서로 다르지만 동등한 관계가 존재한다.)


사람들과 교제에 있어서도 적절함과 부적절함이 있다.

이것은 서로의 나이나 공적, 결연관계의 친밀성 등에 있어서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또 교제의 적절한 시기에 있어서도 다양성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적절하게 화내고 분노를 폭발시키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정이나 도시에서 사람들을 관리할 진정한 지도자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훈련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적절한 효과를 내면서 가르침을 주고 배움을 얻기 위해서는

스승과 제자의 의지에 일치하는 부분이 필요하다.

가르치는 쪽과 배우는 쪽 중 어느 한쪽에서 거부감이 생기면

교육과 학습은 적합하게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일체감의 본보기를 피타고라스는 직접 보여주었다.

피타고라스는 그의 오랜 스승인 Pherecydes가 임종할 때,

공동체를 이루며 살던 이탈리아 크로톤을 떠나 델로스로 가서

그가 죽을 때까지 정성스럽게 시중들었다.

Pherecydes가 죽자 피타고라스는 경건하게 장례를 치렀다.

(이탈리아의 크로톤과 지중해의 델로스 사이의 거리는 매우 멀다.

 이 사실에서 피타고라스는 Pherecydes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먼 길을 달려가 그를 보살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타고라스는 제자들과 한 약속을 매우 엄격하게 지켰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그의 제자 Lysis에게

시라쿠스 사람인 Euryphamus를 만나

그가 여신들에게 경배를 드릴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런데 Euryphamus가 깊은 생각에 잠기는 바람에 Lysis와 한 약속을 잊고

사원의 다른 문으로 나가버렸다.

그럼에도 그의 제자 Lysis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날의 나머지와 그날 밤 그리고 그 다음날의 대부분을 기다렸다.

어쩌면 Lysis는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Euryphamus가 청중으로부터 이 사실을 우연히 듣고는

서둘러 Lysis가 기다리던 곳으로 달려갔다.

Euryphamus는 약속을 잊은 이유를 설명하고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어떤 신이 약속을 굳게 지키려는 너를 시험해보기 위해서 나로 하여금 이렇게 잊어버리게 하였다.”


피타고라스는 정의를 실천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균형의 빛 이상을 밟지 말라”

이것은 정의를 위한 훈계였으며, 공평한 것은 무엇이든지 장려되어야한다고 선언하였다.

피타고라스는 모든 사람들, 특히 많은 사람들(대중)의 의견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사정을 이해하고 바르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몇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만 속하는 것이며, 단지 지성인만이 이것을 할 수 있고,

지성인들은 그 수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라고 가르쳤다. 그러한 사람은 배움이 없기에 개선 또한 없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는 학문이 부족한 사람은 그가 잘 모르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쳤다.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학문을 쌓은 사람들과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의 의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청년기는 더 많은 배움을 얻는 시기이고,

어른들에게는 또 다른 배움이 있다. 어른들은 먼저 아름답고 단정한 것에

관심을 기울여 해야 할 것들을 마땅히 몸소 실천해야 한다.

또 유익하고 유용한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피타고라스는 무엇인가로 채워져야 하는 욕망을 현재의 어떤 것을 즐기기 위하여

혹은 어떤 민감한 에너지에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영혼의 성향, 충동

그리고 욕구이며, 이러한 것과 반대되는 욕망도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면서 욕망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피타고라스의 제자들이 발견한 모든 것은 그들이 아니라

피타고라스에게 속한 것으로 여겼다. 피타고라스가 살았을 동안에는

그를 이름이 아닌 “성자”라고 불렀으며, 그의 사후에는 단지 “그 분”이라고 불렀다.


피타고라스의 제자 중의 한사람인 Hippasus는 받아들일 가치가 없는

나누어지거나 나누어지지 않는 것을 찾아냈다.(무리수의 존재를 말한다.)

또 구에 다섯 개의 정다면체 가운데 하나인

정십이면체를 그리는 방법을 밝혀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Hippasus는 이러한 발견의 공적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였기에

다른 제자들이 그를 그들 공통의 모임에서 추방하였다.

그리고는 인간의 삶으로부터 다른 삶으로 건너가 버린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그의 비석을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 비석에 대해 물을 경우 제자들은

Hippasus가 성스런운 힘이 너무 부족하여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렸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Hippasus를 수장시켜 살해하였다고 와전되는 부분이다.)

제자들은 Hippasus가 발견한 사실뿐만 아니라 기하학과 관계되는 모든 것은

“그 분”이 발견한 것으로 여겼다.

기하학을 피타고라스는 “Historia”라고 불렀다. 

피타고라스는 꿋꿋함은 절제 ․ 정의와 밀접하게 관련되었기에

그것을 보여주는 모범은 모든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따랐다.

Hyppobotus와 Nwanthes는 극도의 꿋꿋함을 보여주었던

Myllias와 Yimycha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폭군 Dionysius는 피타고라스의 제자들 중 어느 누구하고도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일부 피타고리안들이 Tarentum에서 Metapontum으로

평소처럼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사 30명을 보냈다.

무장하지 않은 10명의 제자들은 도망쳤지만 하필 그들 앞에 잘 자란 콩이 놓여 있었다.

제자들은 콩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거기서 멈추곤 몽둥이와 돌을 집어들어 그 무장한 병사들에게 대적하였다.

제자들은 죽을지언정 폭군의 포로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

병사들은 피타고리안들을 생포하여 데려오라는 명령을 완수할 수 없게 되자 당황하였다.

결국 병사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런데 귀로에서 병사들은 Crotonian 사람 Myllias와 Lacedemonian 사람

Timycha를 만났다. 이 두 사람은 여자의 건장 때문에 동료들보다 뒤에 처져 있었다.

병사들은 이 두 사람을 사로잡아서 아주 조심스럽게 Dionysius에게 데리고 갔다.

왕은 그 두 사람에게 정치에 동참하면 크게 명예롭게 될 거라고 구슬렸지만

두 사람 모두 단호하게 거부하였다. 그러자 왕 Dionysius는 그들의 동료들이

왜 콩을 밟는 것보다 죽는 것을 택했는지 이야기해준다면 석방해주겠노라고 제안하였다.

Myllias는 “나의 동료들은 콩을 밟지 않으려고 죽음까지 감수했는데,

내가 이걸 설명하느니 차라리 콩을 밟겠다”라고 대답하였다.

Dionysius는 놀라서 그를 억지로 몰아내라고 명령하였으며,

남편도 없고 임신한 아녀자는 고문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그가 알기를 원하는 것을 쉽게 말하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Timycha를 고문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Timycha는 혀를 이빨로 찢어버리고는 그 폭군을 향해서 뱉어버렸다.

폭군들 가운데서 가장 잔인한 Phlaris가 피타고라스를 사로잡아서

신들을 모독하고 염치없이 뻔뻔스럽게 피타고라스와 Abaris가 말한 모든 것을

폄하했였을 때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피타고라스는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에는 변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모든 것들은 하늘을 따르고, 깊이 생각하는 영혼은 의지의 자유를 가진다고 진술하였다.

또 이성과 지성의 완벽한 에너지에 대하여, 폭군과 모든 행운의 특권

그리고 불의와 인간의 탐욕에 대하여, 그리고 명백하게 이 모든 것들이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하였다. 아울러 가장 타락한 삶과 가장 뛰어난 삶을

진지하게 비교하였다. 영혼과 그 힘 그리고 열정이 존속하는지 생각을 밝혔고,

악의 원인은 신들이 아니며, 질병이나 다른 신체의 불행은

무절제의 씨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Phlaris를 논박하고서 피타고라스는 작품들을 통하여

하늘의 힘과 그 힘의 위대성에 대하여 드러내었으며,

많은 논거를 제시하며 법적인 처벌은 합리적으로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인간과 다른 동물의 차이를 보여주었으며,

내적인 그리고 외적인 말하기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토론하였으며,

지성과 그로부터 비롯하는 지식의 본성과 거기에 뒤따르는 도덕 원리를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서 Phlatis에 대하여 인생에 있어서 유용한 것들 중에서

가장 이로운 것은 무엇이며, 그것들과 조화되는 훈계들을

온화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지도하였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였고,

운명의 산물과 지성의 산물이 어떻게 다른지

또 destiny와 fate에 따라 일어난 것의 차이를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리고 신과 영혼의 불멸에 대하여 말하였다.

피타고라스는 그 자신에게 위험이나 죽음이 예견되는 그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힌 것으로 보이지만,

폭군의 행동에 의해서 자신이 죽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피타고라스가 자신의 신념을 드러낸 그날 Phlaris는 자기 계략에 빠져 자살했다.

피타고라스가 가르친 꿋꿋함을 얻는 첫 번째 도구는 지성이다.

지성은 진리를 지키고 생각이 자유 상태에 있게 해준다.

지성이 없다면 누구도 건전하고 진실한 것을 배우거나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사람은 깨달음을 통해 힘을 얻는다.

“모든 것을 보고 듣는 것은 지성이다. 지성이 없다면 귀먹고 눈먼 것과 같다.”

두 번째 도구는 영혼의 정화이다.

고도의 수학 문제를 풀 때와 마찬가지의 집중을 통하여 영혼을 성스럽고 하고

이로운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영혼을 가장 순수하게 해야 한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비육체적인 본성으로 이끌어질 때

가장 빛나는 것을 쫓아야 하며, 육체의 눈으로 이것을 확인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영혼을 다시 육체에 못박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영혼은 윤회의 거듭한 존재이므로

영혼을 열등한 존재 상태로 이끄는 잘못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크로톤 시민들은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을 따랐다.

소년들은 Pythian의 Apollo 신전에서 여자들은  Juno의 사원에서 배움을 청하였다.

피타고라스는 소년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다.

“누구에게도 욕을 해서는 안 되며, 욕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앙심을 품지 않아야 한다. 배우기에 항상 열심을 다하여야 한다.

겸손한 젊은이는 전 인생을 통하여 청렴함을 지키기란 쉽다.

하지만 어린이와 같이 자연적 상태의 본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나쁜 충동을 쫓아 결국은 불행한 삶으로 마감한다.

신들은 특히 어린이를 세심하게 배려한다.”

어린 영혼들을 가장 사랑하는 Apollo는

그림에서 청년의 나이를 가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피타고라스는 또한 말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듣는 것을 연습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인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그들이 밟고자 하는 경로를 결정할 때는 그들보다 앞선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야 하고

그들 자신보다 나이든 사람들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나중에 그들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이

그들을 해치는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는 여성들에게 희생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신들은 공평함과 겸손함을 존중하는 이들의 기도를 듣는다.

신들에게 바치는 공물은 하인들이 들고 가도록 하지 말고,

그들 자신이 제단에 들고와야 하며 케이크나 꿀이나 유향과 같이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준비한 것이어야 한다.

피를 흘리거나 죽은 육체를 가져와서는 안 되며,

그들이 다시 헌신하는 것을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한 번에 많은 공물을 가져와서도 안 된다.

여자들은 남편들에게 복종적이고 충실하여야 한다.

여자는 자신의 존재 근원인 부모보다 자신의 남편을 보다 더 사랑하도록

신이 허락했기 때문이다. 좋은 예언의 말을 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예언을 하기에 힘써야 한다.

피타고라스는 다음 설명도 덧붙였다.

이집트 사람들이 Theuth나 Mercury라 부르는 창조자들은

여성이 가장 경건함에 순응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창조자들이 왜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에게는 Core,

신부에게는 Nympha, 아이를 가진 자에게는 Mater, 할머니들에게는 Maia란

이름을 붙였는지도 이야기하였다.

Dodona와 Delphi의 신탁이 여성을 통해서 이뤄졌다.

이와 같은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은 크로톤 여성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쳐서

그들은 더 이상 값비싼 옷을 입지 않고 수많은 그들의 옷을 Juno의 사원에 갖다 바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크로톤 아내들의 충직함이 널리 칭송받게 되었다.


(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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