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름 : 폭력이란 무엇인가 저자 : 슬라보예 지젝 역자 : 이현우, 김희진, 정일권 출판사 : 난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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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두달에 걸쳐 이 책을 조금씩 조금씩 깨물어 먹었습니다
소화불량을 일으킬만한 내용도 있었고
뭔가 제대로 끝까지 나가지 않고 어물쩍 중간에 멈춰서 버리고는
세상에 대해 온갖 저주의 비난들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자신이 휘두르는 칼날에 자신이 맞을 것이 분명한데
왜 저자는 그 칼을 남들에게만 열심히 휘두르는지 점점 궁금해졌습니다
왜 남들이 하는 폭력은 비이성적이고 우매한 생각에 의해서 만들어진 폭력이고
자신이 하는 폭력은 합리적이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 이유를
저는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구조적 폭력이나 상징적 폭력으로 정의내린 객관적 폭력이라는 것이
왜 생겨나는지를 저자는 끝내 속 시원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칼을 열심히 휘두르면서도 의도한 듯 핵심쪽으로는 칼날이 비켜나더군요
칸트며 헤겔이며, 프로이드며 라캉을 이야기하지만
그냥 그들의 관념의 도구들을 열심히 휘두룰 뿐
정교한 철학적 자기 성찰을 끝내 보이지 않더군요
제가 보기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관철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하지 않은 듯 싶기도 합니다
사실 그가 이야기 하는 구조적 폭력이란
인간이 태어나면 그 존재 자체가 주위에 폭력이 되는 것이고
주위가 바로 그 인간에게 폭력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가 이야기 하는 상징적 폭력이란
인간들이 주위와 함께 하려하는 순간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본질은 개별 인간의 존재 자체가 태생적으로 객관적 폭력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겠지요
지젝은 끝내 여기까지 오지를 않고
오는 도중의 길에서 만나는 이것 저것들을 쑤셔대다가는
마침내는 지저분한 자기 주장의 자기 합리화라는 진창 속으로 뛰어버리고 마는군요
저는 여기서 조금 더 나가보고 싶습니다
객관적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인간의 실존 자체가 없어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설마 이런 허망한 결론으로 끝내서야 안되겠지요
원하건 원치 않건 실존할 수 밖에 없는 개별 인간들인 우리가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태생적인 이런 폭력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폭력이라고 했던 것들을 바꾸어 표현하면 그건 바로 '관계'가 될 것이고
그 관계에서 인간이 가장 큰 공포를 느끼게 하는 관계가 바로
자신의 생물학적 삶을 위태롭게하는 '주관적 폭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이 실존하는 상황에서는 어떤 형태로는 객관적 폭력의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이러한 객관적 폭력의 관계를 해체해야 하는 상황은
그러한 객관적 폭력이 주는 공포가 주관적 폭력의 수준이거나 그보다 큰 경우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객관적 폭력이 주관적 폭력보다 더 큰 상황이 아니라면
지금의 객관적 폭력을 해체하고 다른 형태의 객관적 폭력으로 옮겨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객관적 폭력 상황이 다른 형태의 객관적 폭력 상황으로 변하기만 할 뿐
결국 객관적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지금 감내할 수 있는 객관적 폭력을 해체하기 위해
주관적 폭력을 쓰는 것을 받아들이라는듯 한 지젝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객관적 폭력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꼭 주관적 폭력 뿐이 필요하다는 듯한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구요
- 조금씩 조금씩 시간을 가지고 이 책을 읽은 이유가
이렇게 제가 주제파악 못하고 저자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아니었구요 ^^
참 좋은 생각의 프레임을 보여 준 좋은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참 많이 생각을 하게 만들고 제자신과 제가 처한 상황을 둘러보게 만들어 준 책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이 책을 읽고난 느낌은
지젝은 정말 훌륭한 그림을 저에게 가져다가 보여주었는데
지젝이 미술평론가라며 그 그림에다가 이런 이론 저런 이론들을 끌어다가 그림을 해석하면서
그 그림이 주는 훌륭한 감상을 방해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그림은 이렇게 해석해야만 한다고 핏대를 세우는 것 같아
그림을 보는 내내 불편했다는 것이지요
그냥 훙륭한 이 그림을 관람자인 내가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놔두었으면 좋지 않았나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 책 참 좋습니다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