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말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를 이겼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자본주의의 승리로 더 이상의 변증법적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역사의 종말’이라 불렀다. 오늘날의 자유경쟁시장은 인류가 지금까지 발견한 참여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메커니즘으로 인식됐다.
1월25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미국의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는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지 않으면 소득불균형에 따른 사회적 갈등으로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사회적 갈등은 선진국으로 갈수록 심해진다. 미국은 30년 전에 비해 부자들의 소득비중이 3배 정도 더 늘어나 소득계층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24%를 차지하고 있다.
직업과 소득보장에 대한 목소리가 커져 갈수록 실업과 소득격차가 더욱 심해지는 이유는 뭘까? 소값은 내리는데 한우식당 등심값은 내리지 않는 이유가 그 답이다.
이는 단순히 유통체계의 문제를 넘어 성장과 분배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과 분배의 균형이 무너지면 가진 자가 더 많은 것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사회는 변한다. 이러한 승자독식의 사회에 일어나는 부조리 현상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어느 신문 1면을 장식한 ‘선진국은 성장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는데, 한국은 분배를 위해 역주행한다’는 내용은 다양한 사회계층의 시각을 간과했다. 재벌기업도 전통적 골목시장인 빵가게나 순대시장에 진출할 수는 있다. 시장주의의 원리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배’가 ‘성장’보다 더 많이 갈구되는 사회 분위기는 뭘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소수의 이익만이 아니라 모두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자본주의를 버릴 수 없다면 돈을 벌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돈을 버는 사회적·공익적 조직으로 자유경쟁시장의 분배와 성장의 해법을 찾아봄은 어떨까?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 교수는 <공유의 비극을 넘어>에서 협동조합을 경제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분명 사회적·공익적 성격을 가진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좋은 대안이다. 지난 2011년 12월29일 ‘협동조합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해 2012년 12월부터는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올해는 UN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이다. 성장과 분배의 경제 해법을 협동조합에서 찾아보자. 빈부격차가 더욱더 심화돼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20여년 전 죽었던 공산주의 망령이 무덤 속에서 우리를 비웃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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