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父在 觀其志
父沒 觀其行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
논어, 학이편, 제 11장
효제가 근본이라고 하였고 앞에서 집에 들면 효를 하라고 하였는데
그 효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한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그 뜻을 살피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 행적을 살핀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3년동안 아버지가 하신 것을 고치지 않는다면 효라고 부를수 있다
막연히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부모의 뜻대로 하는 것이 '효'라고 보기 쉽다.
그런데 바로 그 '뜻'대로의 뜻이 무엇이냐가 효를 실행하는데 핵심인 것 같다
위 문장에서 보면, 그냥 '아비의 '뜻'을 따르라'고 말하지 않고 있다.
'자식은 아비의 뜻을 잘 살펴보라'고 하고 있다.
'아비의 뜻'은 아비가 하는 말을 통해 바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그 뜻을 잘 살펴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무작정 아비가 하는 말을 따르라는 의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비의 뜻을 잘 지켰던 사람이라도
때가 되면 자신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쯤이면 아비의 뜻과는 다른 내 길을 갈 수 있는 걸까?
공자는 그걸 3년 정도의 시간이라고 하였다
바로 자기 길로 가는 것도 좋지 않고,
아비가 가던 길을 평생 지키는 것도 좋지는 않다
대충 3년 정도를 참고 지켰다면 그 정도면 효를 다했다고 보면 된다고 하는 것 같다
-
유학에서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종이라는 것이 '무엇에 대한 순종이냐'가
유학을 어떻게 볼 수 있느냐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위 문장에서 공자가 한 말을 보면
'부모의 뜻'이라는 것이 '부모'의 것이기는 하지만
그 '뜻'은 온전히 자식이 살펴서 관찰해서 얻는 것이다
부모의 주관적인 '뜻'과는 다른
자식이 바라보는 자식 입장에서의 주관적인 '부모의 뜻'이라는 것이다
효라는 것이 온전히 부모의 주관적인 의지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자식이 관찰하고 해석하여 만들어낸 부모의 '뜻'을 따른다는 것이다
부모의 주관적인 의지와 자식이 관찰해서 얻은 부모의 '뜻'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