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악의 와이어 패치를 바꿔주고 있는 두 명의 '컴퓨터']

세계 2차 대전 당시 탄도 미사일의 궤적과 탄착 지점을 측정하기 위해 개발되기 시작한 에니악이 3년 만에, 전쟁이 끝난 뒤에야, 완성됨. 존 모클리(John Mauchly), 프레스퍼 에커트(J. Presper Eckert)가 미 국방부의 지원 하에 제작한 이 거대한 계산기는 30m의 길이에 3m의 높이, 30cm의 너비에 30톤의 무게를 자랑하고 있었음. 그리고 내부에는 1만 7000개의 진공관과 7만 개의 저항체, 1만 개의 콘덴서, 그리고 6000개의 (손으로 조정하는) 스위치가 있었음. 에니악은 천공카드, 스위치, 전등, 전기 플러그에 의해 데이터와 명령어를 입력하고 결과를 출력했음.

에니악은 당시까지 가장 빠른 컴퓨터 중 하나였던 하바드 마크 I보다 1000배 정도 빠른 계산 속도를 자랑하고 있었음. 에니악은, 소프트웨어가 아닌, 물리적 조종에 의해 작동되는 컴퓨터의 가장 빠른 한계 속도를 보여주고 있었음.

그러나 에니악은 전쟁의 목적으로 제작된 '하드웨어 계산기'로, 다른 목적의 계산을 하기 위해선 너무나 많은 불편이 따랐습니다. 이 기계를 프로그래밍해서 완전히 다른 문제를 계산토록 하려면 컴퓨터 내부의 복잡한 와이어(전선) 구조를 전부 바꿔줘야 했는데, 경우에 따라 수일 걸릴 때도 있었죠. 따라서, 에니악의 제작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보다 '일반적인 용도의' 다목적 컴퓨터를 개발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계산하다(compute)"라는 동사의 사람 명사형인 "컴퓨터(computer)"라는 단어는 과거 18세기, 항해에 필요한 지도와 운항로를 계산하기 위한 통계 도표를 그리던 사람들을 가리켜 쓰였다고 합니다. 그 뒤로 세계 1차 대전 당시 새로운 장거리 포탄과 미사일이 개발됐고, 이 무기들의 탄착 지점을 계산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들을 역시 "컴퓨터"라고 불렀죠. 컴퓨터란 단어의 가장 직접적인 유래는 바로 이 에니악에서 비롯됐습니다.

당시 에니악에는 소프트웨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에니악을 작동시키기 위해선 수많은 전선들을 끊임없이 손으로 이어서 계산을 위한 '회로'를 만들어 줘야 했습니다. 이는 말하자면, 매우 원시적인 형태의 컴퓨터 '프로그래밍'이었죠. 에니악의 작동을 위해 미국 정부는 여러 명의 젊은 여성들을 고용해 컴퓨터의 원리와 수학에 대해 가르치고 '컴퓨터 전선 이어주기' 작업에 투입합니다. 오늘날 최초의 직업 '프로그래머'였던 이들 여성들을 가리켜 "컴퓨터(computer)"라고 불렀고, 이 단어는 오늘날 "컴퓨터"의 기원이 됩니다. 사람 명사였던 컴퓨터는 후에 기계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로 바뀌었고, 프로그래밍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컴퓨터" 대신에 "코더(coder)," 혹은 "프로그래머(programmer)"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Go To" by Steve Lohr, Basic Books 2001, ISBN 0-465-04225-2)

같은 해 에커트와 모클리가 최초의 컴퓨터 제조 회사, 일렉트로닉 컨트롤 사(Electronic Control Corp)를 설립함. 여기서 이들은 폰 노이먼 아키텍처 기반 컴퓨터이자,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업용 컴퓨터, UNIVAC(Universal Automatic Computer)을 개발에 착수함. 그러나 일렉트로닉 컨트롤은 UNIVAC이 완성되기 전 레밍턴-랜드(Remington-Rand)로 흡수됨.

1951년 완성된 UNIVAC은 미국 국세청에 도입됐고, 1952년엔 TV 프로그램에서 대통령 선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등 컴퓨터에 대한 대중 인식을 넓히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Computer History Museum, Timeline of Computer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