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느 순간부터 우리들은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힘을 잃은 채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말과 행동에 움찔거리는
소시민으로 전락하기 시작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의 말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면서,
두 어깨 위에 짊어지게 되는 책임의 무게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이 더 이상 영향력을 지니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자괴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일까?
그것도 확실치 않다면, 세상이 내 뜻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스스로 변화해 가면서
어느덧 멀리서 그 현상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때부터 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소외 당한 느낌과 그에 수반되는 당혹하고 씁쓸한 마음은 우리를 더욱
왜소하게 만든다.
이럴 때 우리는 도대체 내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가 반문하게 된다.
분명히 세상이 무섭지 않던 시절이 우리 모두에게도 있었다.
세상과의 부조리한 타협을 죽기 보다 혐오하고,
다른 이와 똑같이 사는 건 ‘내 삶의 수치’라고 강하게 부정할 수 있었던,
알 수 없는 용기와 열정에 두 발을 버티고 있는 대지마저 녹일 것 같은 그런 시간이
분명히 우리 모두에게 있었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왜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몸을 굳게 지탱하고 있는 대지의 단단함과 힘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것일까?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라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돈이 너무 들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 상황을 유지해야 한다고?
사회적 지위도 있으니 조용히 타협하면서 점잖게 살아야 한다고?
이 모두 다 거짓말 임은 우리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그 이유가 단 한 가지임을 다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스스로의 모습으로 살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지 않는가? 그 어느 동물도 스스로의 모습을 포기하며 살지는
않는다. 그 어느 식물도 스스로의 모습을 포기하며 시들어 죽지는 않는다.
이 지구상의 모든 존재는, 인간만 빼고, 모두 다 자신의 삶을 묵묵하게 살다가
조용히 스러질 뿐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모습을 포기하기 시작 했는지
기억이나 할 수 있는가? 그런 상실의 아픔을 느끼고 단 한 번이라도 서럽게 자신을
향해 울어본 적이 있는가?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기를 포기한 우리들에게
도대체 어떤 것들이 우리의 영혼을 떨리게 하는 감동과 흥분을 줄 수가 있겠는가?
나는 지금 떨리는 마음으로 에머슨의 ‘자시론(自恃論 – Self Reliance)’을 펴고 있다.
그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Ne te quaesiveris extra” – 너를 너 밖에서 구하지 말라
‘인간은 그 자신이 운명의 별이다.
정직하고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는 정신은
모든 빛과 모든 힘과 모든 운명을 지배한다.
그에게 일어나는 일로서 무엇 하나 빨라서 안 될 일,
늦어서 안 될 일 없다.
우리의 행위가 곧 우리의 천사, 신이건 악이건,
그것은 언제나 우리를 따르는 인과의 그림자이다.’
보몬트, 플리체 합작
<정직한 자의 서사>
“ 그 어린 것을 바위 위에 내던져라.
늑대의 젖꼭지로써 그것을 키우고
독수리와 여우와 더불어 겨울을 나게 하고,
힘과 속력이 팔이 되고 발이 되게 하라. “
에머슨은 이러한 독창적이고 진부하지 않은 몇 절의 시를 통해 심령을 통한
가르침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우리 역시 똑 같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우리들 내부 깊은 곳에 아직 메마르지 않은 원천적인
샘이 흐르고 있고, 꺼지지 않은 열정의 불씨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믿고 자신의 목소리를 지니고 세상에 호소한 이들을
우리는 용감하다고 해왔고, 그 목소리가 세상을 움직였을 때
우리는 그들을 위대하다고 해왔다.
이제 우리는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을 지녀야만 한다.
그리고 완전히 홀로임을 느끼고
서서히 밑바닥에서 조용히 울려 퍼지는 자신 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내가 들은 나의 첫 목소리는
‘바보 같은 놈’이었다.
우리 모두는 상상할 수 없는 자신 만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나는 비록 ‘바보 같은 놈’이라는 목소리를 들었지만
그 목소리는 나의 전 육신과 영혼을 엄청난 흥분으로 들뜨게 했다.
‘나 만의 목소리를 되찾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가 우리의 삶을 되찾아 가는 여정 중 가장 짜릿한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