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회(9월 16일) 수원 독서 모임 시인 초청 후기 2부입니다.
일 시 : 2009년 9월 16일(수)
주제도서 : '아름다운 고집'
초청시인 : 성 백 원 님
장 소 : 민들레 영토 Room #7
시 간 : 19:00 ~ 21:00
참석 회원 : 진영대, 김경석, 양찬웅, 짜라 (참석 시간순)
음 료 : 따뜻한 민토차
다 과 : 비스킷(요즘 빵이 수급 안되고 있다네요)
뒷풀이
장 소 : 수원역 먹자골목 이화주막
시 간 : 21:00 ~ 23:00
주 류 : 참이슬(소주)
안 주 : 세트메뉴(고기볶음 + 해물탕), 해물떡볶이, 서비스안주(튀긴 건빵, 뻥튀기등등)
(성백원 : (성), 김경석 : (경), 양찬웅 : (찬), 짜라 : (짜), 진영대 : (영) 으로 표기한다. 내용이 길어서 존칭을 생략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성) : 내 시에 '보름달'이라는 시가 있다. 달을 보면 달의 모습은 항상 변한다. 매일 매일의 달의 모습이 다르다. 달은 차다가도 기울다. 아마 그런 달을 보는 사람들에 따라 달의 모습도 달리 보일 것이다. 87년에 먼저간 처형이 있다. 그 처형과 남은 조카들을 생각하면서 아이들에겐 달이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하며 지은 시이다.
(짜) : 언제 어떻게 시를 짓게 되나요?
(성) : 글을 쓰는 것은 밤나무 밑에서 밤을 줍는 것과 같다. 밤나무 밑에 떨어진 밤들을 주머니에 담다보면 주머니가 넘치게 되고 그러면 밤을 담을 봉지가 필요하게 된다. 생각들이 내 속에 차다가 넘치게 되면 이젠 글이라는 봉지를 빌려 담게 된다. 생각들을 열심히 주워 담다보면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찬) :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신데, 요즘 아이들 어떤가요?
(성) : 많이 변했다. 우선 예전에 '권위'라고 하던 것들이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과거와 같이 선생님이기 때문에 따라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아이들은 바로 선생님 말의 잘잘못을 따지려든다. 하지만 그건 어찌보면 정당한 것이다.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보면 아이들이 하는 요구는 인간답게 대접해 달라는 정당한 요구이다.
(찬) : 그럼 선생님은 요즘 아이들의 태도를 어느 정도 인정하시는 것인가?
(성) : 아이들을 망치는 건 오히려 어른들이다. 몇몇 부모들이 아이들을 맘대로 하지 않는가? 아이들이 원해서 학군 바꿔서 전학가자고 하는게 아니지 않는가? 부모의 욕심이 빚어내는 문제들이 많다. 그에 비하면 아이들이 하는 요구는 인간으로서의 정당한 요구들이다. 기원전의 문서에도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다'라고 했다 하지 않는가. 이 시대가 지나고 나면 지금 아이들의 요구들이 너무나 당연한 것들일 수 있다. 인권을 바탕으로 민주주의라는 절차를 통해 아이들을 대해야 한다.
(성) : 그래도 아이들은 사회화될 필요는 있다. 자신이 중요한만큼 타인도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걸 배워야한다. 가정에서 이런 사회화가 생략된채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아이들이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성) : 경주 최부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정말 훌륭한 부자다. 그래선지 6.25전쟁 당시에도 온전히 보전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시인은 사방 백리 안에 사람들을 편안케 하는 것이 아닌가한다.
(영) : 한비야 책에 보면 아침 발성연습을 할 때 시를 소리내 읽는다고 한다. 이것도 좋은 방법같다
(성) : 좋은 방법이다. 중고등시절 웅변을 배웠다. 당시에 웅변 연습 삼아서 매일 산에 가서 글을 소리내 읽었다. 그때 선배가 소리내 읽으며 연습을 하라고 '자유'라는 시를 주었다. 그 때 읽어던 시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렇게 읽었던 시가 정말 내 속에 남아서 시 속의 내용처럼 살게 되었다.
(성) : 케네디家에선 식사 시간에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주제와 관련된 신문기사나 내용들을 미리 읽어 보고 식사에 참석해서 토론을 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길러진 아이들이 결국 케네디家라는 가문을 이루게 된다.
(성) : 오고 가는 말 속에서 사람들은 빈번히 오해하기도 하지만 글은 대체로 오해를 만들지 않는다. 글은 쓰기 전에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책임감을 가지고 쓰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글을 읽고 또 읽다 보면 글쓴이의 생각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찬) : 우리 모임도 그렇지만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계발에 고민이 많고 앞으로 할 일들에 고민이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성) : 소설을 쓰고 싶다. 개인적으로 아파트 거주 문화와 전통적인 거주 문화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고 느껴왔다. 어떻게 하면 삭막한 아파트 거주 문화에 전통적인 거주 문화의 장점들을 녹여 넣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이와 관련된 소설을 쓰고 싶다. 또한 역사를 따라서 역사시를 쓰려고 하고 있다. 그러한 역사시가 사람들에게 역사를 좀더 잘 느낄 수 있도록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영) : 고흐의 말년의 편지를 보면, 평론가로부터 호평을 받을 걸 보고 그런 평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동생에게 전하고 있다. 선생님은 평론가의 평을 어떻게 생각하나?
(성) : 호평에 관해선 나도 고흐와 비슷하지 않나 생각한다. 시나 그림이나 모든 것엔 완성이란 없다. 완성이란 사람의 죽음이 아닐까? 죽기 전까진 완성이란 없다. 계속해서 부족한 것을 채워가는 과정이다. 나도 사람인만큼 호평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호평은 나의 부족한 것을 깨닫게 해주지는 않는다. 나의 부족한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은 비평이다. 가끔 글 밑에 선플이 달리는 것들을 볼 수 있는데. 그 많은 선플들 글 쓴사람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거다. "좋은 글입니다" 뭐 이런 것들 수천개 달려 봐야 소용없다. 자신의 글에 한줄이라도 지적을 해주는 악플이 차라리 낫다. 물론 글쓴이가 그 댓글을 받아들일 여유가 있을때 가능한 거다.
(짜) : 수업에서는 교과서 속 시를 해석하고 분석하여 제시한다. 이렇게 하면 독자가 해석할 몫이 없어지지 않나?
(성) : 잘못된 방식이다. 시란 읽는 사람의 것이다. 한가지로만 읽혀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프랑스에선 학기 수업의 시작을 시로 한다고 한다. 시를 한편 주고 끝 몇줄을 남겨둔 뒤에 거기를 각자 채우도록 한다고 한다. 이런 것이 진정으로 시를 배우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아마 이런 교육이 프랑스로 하여금 문화국가라는 이미지를 만들게 하는 것 같다.
(영) : 영국 시인 브라우닝의 일화를 보면, 브라우닝이 밤에 런던 시내에 산책을 나갔다. 걷다 보니 건물 2층에 '브라우닝 연구소'라는 간판이 보였다. 그래서 올라가 한켠에 앉아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니, 자신의 시를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고 분석하고 있는데 자신이 생각하지도 않던 것들까지 동원해서 열심이더란다. 마침내 듣고 있던 브라우닝이 "이러 저러한 것은 단순히 이렇게 해서 쓴것이 아닐까요?"라고 했더니 거기 있던 사람들이 '엉터리다', '브라우닝에 대해 뭘 아냐?'등등의 혹독한 비난을 듣고 쫒겨 났다고 한다.
시인으로서 사람들이 자신의 시를 제 맘대로 읽고 해석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성) : 시는 시인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것이다. 읽는 사람에 의해 시는 다시 태어나는 거다.
(성) : 시집 4부 '원평리에서'는 명절에 수원의 칠보산에 올랐다가 내려 오면서 쓴 시다. 이산 가족이 꼭 남북 이산 가족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한에도 이산 가족들이 있다. 뜻이 맞지 않으면 생가족이 이산 가족이 되어 만나지 않게 된다. 예전 살기 어렵던 시절에는 뭉쳐야 어려움을 헤쳐가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니 싫든 좋든 만나고 모였다. 하지만 생존에 어려움이 없는 요즘에는 굳이 맞지 않는 가족을 찾아가 만나지 않는다. 나도 개인 사정으로 명절에 집에 있다가 산에 오르게 되었다. 산을 넘어 원평리에 이르러 버스를 타서 보니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명절이라 회사가 쉬니 삼삼오오 모이기 위해 버스를 탄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낯선 외로움 데불고 이 땅을 닮은 나도 저 하늘과 닮은 너도 서럽기는 매한가지 홀로 가는 노을빛에 눈물 흩뿌리고 ......' 라는 시가 나오게 되었다. 아마 읽는 사람은 이 사실을 듣지 못했다면 전혀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위에 정리한 글은 저 정도이지만 사이사이 소주제로 다뤄진 이야기와 또 제가 이야기 듣는 거에 빠져서 노트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훨씬 많습니다.
암튼 이런 이야기들이 오간 후에 뒷풀이 장소 이동 전에 작가 사인회를 잠시 가졌습니다
저의 책 앞엔 이렇게 적혀 있네요
"진영대님 惠存
- 절반의 생은 즐거운 착각으로
나머지 절반은 아름다운 고집으로 -
2009년 초가을
성백원 "
저녁 9시에 맞추어 뒷풀이 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선생님을 모시고한 뒷풀이 시간이 한시간 반정도였으니 그때 한 이야기도 정말 많았지만 자리가 술자리이다보니 노트는 하지 못해서 마땅히 정리할 길이 없네요.
안주와 술을 시킨 후, 시인들의 뒷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고
등단한 사람들이 왜 절필을 하게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고 ......
음... 알코올과 함께 들었던 내용들은 알코올과 함께 사라지나 봅니다. -.-;;
감기때문에 힘들어하는 짜라씨까지 함께한 소주가 각 1병되어갈 때인
10시 30분 경에 선생님은 먼저 일어나셨고
저희들은 남아서 못다한 이야기들을 더 했습니다.
시인 초청 행사에 대한 이야기, 모임 참석자를 더 늘리도록 뭔가를 해야 하나? 하는 이야기, 모임에 대한 각자의 소회를 나누었습니다.
11시 20분 될 즈음 자리를 뜬 거 같습니다.
자리를 파하고 짜라씨 버스타는 곳까지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짜라씨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시 한수가 소설 한권에 해당한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군요.
개인 후기
개인적으로는 중학교 시절 은사이신 선생님을 재발견한 기분이었다.
선생님이 시인이 되셨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시에 대해 무심했던 나로서는 별 느낌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선생님을 모시고 말씀을 듣노라니
시인들의 번뜩이는 관찰력과 놀라운 통찰 그리고 뒤집어 보는 시각에 감동했다.
그리고 이번 기회가 시를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짜라씨 말처럼 시 한편이 두꺼운 소설 한편이 담고 있는 것을 담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시어들은 그렇게 다양하고 번뜩이는 상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시는 세상을 누구나 보는 시각으로 보지는 않았다.
좀 더 다른 시각에서 바라 보았을 때 그것이 시가 되는 것이었다.
창조적인 능력을 기르자고 다들 법석인데, 그러기 위한 연습은 의외의 길에도 있었다.
찬찬히 시를 읊어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시를 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화장실에서 보기 가장 적합한 책은 소설책도 성공서도 종교서적도 아니었다.
바로 시집이었다.
볼일 보는 짧은 시간에 시 한수 읽고 음미하는 것보다 더 좋은 독서는 없을 것이다.
뒷장에 적혀 있는 내용을 보고 싶어 안달하면서도 책을 접고 화장실 문을 나서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시 한수 읽는 것만으로도 소설 한권 본 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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