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에 대한 예배 / 황지우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이 地表 위에서 가장 기품있는
建木 소나무, 머리에 눈을 털며
잠시 진저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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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절대로 타협이 되지 않은 인간(?)들이 한두명은 존재 한다고 본다.
그런 인간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몸서리 치게 만드는 종족들 말이다.
나도 그런 인간이 한두명 있다.ㅋㅋ
그런데 용서라는 것이 무엇인가.
여태까지 우리는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식이 아니었나 싶다.
아니면 가증스럽게, 불쌍해서 봐준다. 아니면 내가 인격이 니보다는 훌륭하니 용서해준다는
자기만족이 아니었을지 한번 더 생각해본다.
그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니라 위의 시처럼 타인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때로는 그사람 가진 단점까지 받아들이는 것이. 특히나 이익단체인
사회생활에서는 정말 내자신을 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풍을 유지 할수 있다면 정말 그릇이 큰 인물이 아닐까 싶다.
삼국지에 보면, 조조나 유비의 부하들이 이리저리 배신을 하는 스토리가 많이 나온다.
조조가 능력위주의 경영을 했지만 불신배들에게는 가차없이 보복을 했다면 유비의 경우는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는 자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다시한번 기회를 준 신하들이 오히려
더맣은 충성을 한것 으로 나온다.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손해보지 않을려는 내마음 가짐이 타인을 용서(있는 그대로 받아들임)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잠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