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아테네 폴리스는 ‘연설 기반 민주정치’였다. 그들은 말이라는 정치 수단을 통해 공동체를 운영해나갔다. 한나 아렌트는 아테네인들이 자신들은 야만인들과는 달리 정치적인 일을 연설이라는 형식으로 강압 없이 진행한다는 데 자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아테네인들이 수사학이라는 ‘설득의 기술’을 진정한 최고의 정치적 기술이라 생각한 건 이 때문이었다.

 

아테네인들은 노예와 야만인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가 아닌, 명령의 형태로 말하는 것과 복종의 형태로 듣는 것은 실제의 말하기와 듣기로 간주하지 않았다. 말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동등한 다른 사람들이 존재해야 했다. 아테네인들의 생각에 노예와 야만인들은 주인이나 폭군의 존재 때문에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들은 폴리스라는 공간에서 자유롭고 동등한 인간들이 말을 통해 갈등을 조율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아렌트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행위와 살아 있는 언어를 가능케 하는 공간인 폴리스는 삶에 우아함을 제공할 수 있었다"고 표현했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디오도토스는 아테네 정치에서의 말과 연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토론이 행동의 지침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거나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불확실한 미래를 설계할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것이고, 만약 불명예스러운 정책을 권하고 싶지만 좋은 말로 나쁜 일을 옹호할 수 없어 모함으로 반대론자들과 청중을 겁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아테네의 연설 기반 민주정치는 앞에서 보았듯이 개인이 자립했던 아테네 폴리스가 몰락하고 인류의 공동체 규모가 커지면서 실현이 불가능해졌다. 구성원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늘어나면 말과 연설로 공동체를 민주적으로 운영해 가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정치의 미래에서 ‘데이터 기반 민주정치’로 다시 부활할 것이다. 아테네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민회라는 비교적 작은 오프라인 공간에 모여 말과 연설을 통해 민주정치를 운영해갔다면, 정치의 미래에는 구성원들이 공간의 제약이 없는 인터넷에 모여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데이터로 표현하는 행위를 통해 민주정치를 운영해갈 것이다.

(282~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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