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7. 5. 3 북아일랜드 앤트림 리사노어~ 1806. 3. 31 잉글랜드 서리 치스윅.
북경에 파견된 최초의 영국사절.
Baron of Lissanoure(1776~), Viscount Macartney of Dervock(1792~)라고도 함.
오랜 전통의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 가계의 혈통을 이어받은 매카트니는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했고 1759년 문학석사학위를 받았다. 1764년 기사작위를 수여받았으며, 그해 러시아에 영국 특사로 파견되었다. 러시아에서 귀국한 후 의회에 진출해서 1769~72년 아일랜드 총리를 역임했다. 1775년 카리브 제도(그레나다·그레나딘·토바고)의 총독이 되었고 1776년 아일랜드 남작이 되었으며 1780~86년 마드라스(지금의 첸나이) 총독을 지냈다. 매카트니는 1792년 자작이 된 후 영국이 보다 폭넓은 무역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교섭하기 위해 중국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북경 정부는 매카트니의 무역확대 요구를 받아들이기는 커녕 중국은 자급자족할 수 있으며, 따라서 단지 특혜의 의미를 가지는 제한된 교역만을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황제와 중신들은 그의 선물을 단지 공물로 여겼으며 제국주의적인 거만한 태도로 그의 임무를 전적으로 중국에 복종하기 위한 한 형태로 간주했다.
1794년 매카트니는 아일랜드 귀족으로서 백작이 되었고 1796년 남작의 자격으로 영국 귀족계급에 올랐다. 그 직후 매카트니는 아프리카 남단에 있는 새로 개척한 식민지인 희망봉의 총독으로 임명되었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1798년 직책에서 물러났다. 그에게는 후계자가 없어서 죽은 후 모든 작위가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