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앞에서 내가 계산에 매우 서툰 사람이라는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학창시절 내내 수학을 참 좋아했다. 그러다가 대학입시를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바로 계산이 부정확하고 서툴다는 이 치명적인 약점 때문이었다. '수학은 정말 흥미롭고 좋은데, 나처럼 계산이 서툰 그런 사람이 수학과를 지망해도 괜찮을 걸까?' 이런 생각 때문에 선뜻 수학과로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서점에서 '수학 세미나'라는 잡지를 읽다가 오카 기요시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학자의 인터뷰 기사를 발견했다. 존경하는 수학자의 인터뷰를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읽어나가는데, 기사 내용 중 "수학과 계산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아, 역시 나 같은 사람에게 수학과는 힘들겠구나...' 참담한 마음과 실망감에 잡지를 그냥 덮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 계속 읽어보았다.
그런데 바로 다음 구절에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관계인가 하면, 수학자들은 대체로 계산을 잘 못한다는 겁니다"라고 써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지금도 오카 선생님의 이 말씀에 용기를 얻어 수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거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수학과에 들어온 나는 오카 선생님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24쪽)
세계수학자대회(ICM·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가 오늘 서울에서 개막했지요. '수학계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117년 전통의 기초과학 분야 최대 학술행사입니다.
오늘 '수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Fields Medal)을 여성 최초로 수상한 마리암 미르자카니 스탠퍼드대 수학과 교수가 이런 말을 했더군요. "수학을 하면서 중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내가 재능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개인 안에 내재된 창조성을 발현해줄 자신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수학이 중요한 건 그것이 단순히 계산을 빨리 하거나 잘하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게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마흔에 다시 읽는 수학'을 쓴 수학자 오카베 쓰네하루는 책에서 "이제 와서 새삼 수학이 내 인생에 무슨 보탬이 된다는 거야?"라며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수학이야말로 문제의 본질을 무엇인지, 즉 지혜의 원리를 추구하는 데 가장 알맞은 학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본질을 이해하고 꿰뚫어볼 수 있다면 아이디어를 떠올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개념을 쉽게 설명해 줄 수도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이만큼 도움이 되는 것이 또 있을까?"(23쪽)
오카베 쓰네하루는 자신이 계산에 매우 서툰 사람이지만 "수학자들은 대체로 계산을 잘 못한다"는 세계적인 수학자의 말에 용기를 얻어 수학자의 길을 택했고, 그 말은 맞았다고 말합니다.
"수학에서는 계산보다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본질만 이해하면 언제든지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형태를 뽑아낼 수 있으며, 그 결과 문제풀이는 훨씬 더 편하고 간단해진다."
가우스가 어린 시절 1부터 100까지의 수를 더하라는 선생님의 과제를 몇 초반에 정확하게 풀어낸 것도 그가 남들보다 덧셈을 하는 속도가 빨라서가 아니라 수의 특성을 생각해 빠르고 간단하게 계산하는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이었지요. 문제의 '본질'을 고민했다는 의미입니다.
'수학계의 올림픽'의 한국 개최를 계기로 수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을 떠올리며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를 항상 갖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