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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3월27일. 맑았고 바람도 없었다. 일찍 식사를 한 뒤, 배를 탔다. 소포에 도착했다. 쇠사슬을 가로로 설치하는 것을 감독했다. 내내 나무 기둥을 세우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더불어 거북선에서 포를 쏘는 것을 시험했다.

 

4월12일. 맑았다. 식사를 한 뒤, 배를 탔다. 거북선에서 지자와 현자포를 쏘았다. 순사의 군관 남 공이 자세히 살펴보고 갔다. 낮 12시쯤 이동했다. 동헌에 좌기했다. 훈련용 화살 10순을 쏘았다. 관아에 오를 때, 노대석을 보았다. (56,59쪽)

 

 

1592년 4월13일. 임진왜란이 발발한 날입니다. 

그 전날인 4월12일,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 테스트를 완료했습니다. 

그 며칠 전인 3월27일에는 거북선에서 포를 쏘는 시험을 했지요.

장군은 전쟁을 대비해 거북선을 만들기 시작했고, 임진왜란 발발 전날 거북선을 사실상 완성한 겁니다. 그 이후의 조선 수군을 전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그대로입니다.

 

이 내용을 담은 '난중일기' 완역본이 최근 출간됐더군요.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에 의해서입니다. 12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입니다. 덕분에 요 며칠 이순신 장군의 마음 속에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이 책을 옮긴이의 눈과 마음이 아니라, 420여 년 전, 이순신 장군의 눈과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한 역자의 권유처럼 말입니다. 

 

옮긴이는 이 번역을 위해서만 7년을 매달렸습니다. 한문을 단순히 한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일기의 맥락과 번역의 근거 등을 고증을 통해 확인했다고 합니다. 수 많은 각주가 그 노력을 말해주고 있더군요.

 

예전에 경제노트에서 말씀드린 대로, '번역자'만큼 고마운 분들이 없습니다. 우리가 읽지 못했거나 속도가 너무 느려 엄두를 못냈을 좋은 책들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들입니다. 게다가 번역이라는 작업은 들이는 노력에 비해 그만큼 빛이 나지도 않습니다. 원작의 의미를 생각하며 표현 하나 하나를 고민하다 보면 한 페이지를 제대로 번역하는 것도 무척 힘겹습니다. 그런데도 사회적, 경제적 평가는 그 고마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스 고전을 번역해주시는 천병희 선생을 떠올리면서, 난중일기 완역본을 역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읽었는데, 정작 박종평 선생은 공을 이전 난중일기 공동 번역자들인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의 고 박혜일 교수, 한국원자력연구원 고 배영덕 박사, 최희동 교수, 김명섭 박사에게 돌리더군요. 원자핵공학을 공부한 이 네분은 1990년대에 서울대출판부에서 '이순신의 일기'를 번역해 출간한 이들입니다. 박종평 선생은 이분들에 대해 서문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30여 년을 아무런 사심 없이, 국가 등의 지원 없이 '난중일기'를 매개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초서 판독 작업에 혼신을 다했습니다. 그 책들을 보면서, 기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과는 인연이 없습니다. 번역 작업을 하면서 책들을 접하고, 그들이 참다운 학자, 기본을 갖춘 진정한 선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8년은 이순신 장군이 노량에서 순국하신지 4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난중일기'를 서가에 놓고, 힘이 들 때마다 꺼내 한 두 페이지씩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