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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구는 18년 간의 자발적 유배생활을 통해 관직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양반이라도 자립적인 삶의 기반을 마련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32쪽)

 

 

 

'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굴곡'이 없는 인생은 없지요. 중요한 것은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좌절하느냐, 반대로 오히려 좋은 기회로 만드느냐는 우리 각자에게 달려있습니다.

 

서유구. 학생시절 국사 교과서에서 한 줄로 접했던 인물입니다. 

우리 대부분이 아는 그는 '조선후기 실학자로 농업 분야의 백과전서인 '임원경제지'를 저술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서유구(1764~1845)의 인생을 자세히 살펴보면 눈에 띄는 대목이 많습니다. 다산보다 두 살 아래인 그는 정약용에 비해 후대에 덜 유명해지긴 했지만 여러모로 비견되는 인물입니다. 당대의 최고 엘리트로서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18년의 정치적 유배기를 거쳐 대작을 저술한 것이 다산과 매우 비슷합니다.

 

서유구는 명문 양반가 출신입니다. 과거 급제 후 순조로운 관직 생활을 하던 그는 1806년 숙부와 영의정이었던 재종숙부가 정치적인 이유로 유배되며 정계에서 축출되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 낙향했습니다. 당시 43세였던 서유구는 이후 18년 동안 스스로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했지요.

 

낙향 직전 홍문관 부제학일 정도로 고위 관료였던 서유구는, 낙향한 후에는 경기도 여기저기를 옮겨다니며 직접 논밭을 갈고 땔감을 구하며 간신히 먹고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가난할 때 끼니를 해결하는 요령을 기록한 글이 있을 정도로 그는 궁핍한 생활을 했습니다.

 

"서유구는 파주 장단 등지로 낙향한 후 정약용과는 달리 경학과 경세학을 철저히 외면했다. 경학을 해봐야 옛 사람의 고리타분한 이야기 나열에 지나지 않고 경세학을 해봐야 결국 '흙 국'이나 '종이 떡'처럼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유구는 힘겨웠던 18년의 자발적 유배 생활 동안 일반 국민들의 실상을 직접 경험하며 고위 관직에서는 결코 알 수 없었을,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었습니다.

그 결실이 우리가 아는 '임원경제지'입니다. 서유구는 농학, 천문학, 공학, 수학, 요리, 의학, 어업, 예술, 상업 등 16개 분야를 기존의 경학이나 경세학의 눈이 아닌 백성의 눈으로 보며 113권으로 완성해냈습니다.

 

서유구는 다산과는 달리 18년 동안의 자발적 유배 생활 이후 정계에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76세로 퇴임할 때까지 15년 동안 승지, 사헌부 대사헌, 형조 예조 호조 이조 병조판서 등 고위 관료로 활약했습니다.  

 

서유구가 새로운 시각으로 새상을 바라보며 '임원경제지'라는 역작을 집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스스로 선택했던 '18년의 자발적 유배' 덕분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언젠가 찾아오는 '위기'. 중요한 것은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