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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의 그레이엄과 버핏의 만남
입력 2019-09-17 오후 8:2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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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한 이름 없는 투자자가 워싱턴 포스트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는데, 최종 취득 규모가 무려 13퍼센트에 이르렀다. 이사회에서는 무시해버리라고 조언했지만, 그레이엄은 이 새내기 투자자, 바로 워런 버핏을 만났다.
그레이엄은 버핏에게 이사회에 합류해달라고 권고했다. 버핏은 곧 그레이엄의 사업 멘토가 되어, 그레이엄이 관행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회사를 경영할 때 길잡이로 힘을 보탰다.(165쪽)
 
 
 
워싱턴 포스트의 캐서린 그레이엄. 1963년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워싱턴 포스트의 사장이 된 그녀는 일부 주변의 걱정을 불식하고 1993년 물러날 때까지 신문사를 성공적으로 경영했습니다. 1967년 벤 브래들리를 편집국장으로 기용했고, 워터게이트 스캔들 보도로 1974년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어냈지요.

신문사의 명성을 높인 성과들 외에, 그레이엄은 경영 측면에서도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22년의 재임 기간 동안 사업 분야 다각화에 성공했고, 1971년 증시 상장 이후 1993년 퇴임 때까지 연평균 22.3퍼센트라는 수익을 주주들에게 안겨주었습니다. 같은 기간 S&P 500의 연평균 수익률은 7.4퍼센트였습니다.

캐서린 그레이엄의 성공을 뒷받침해준 이들로 시먼스 COO와 브래들리 편집국장이 대표적으로 꼽히지만, 이사회 멤버로 활동했던 워런 버핏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비교적 무명인 이 인물이 천재임을 알아본 것은 어머니 업적 가운데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부분 중 하나인데, 어머니가 했던 일 중에서 최고의 한 수였어요."

아들 도널드 그레이엄의 말처럼, 캐서린은 1974년 신문사의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던 한 무명의 낯선 투자자를 만나보고 그의 특별한 능력을 알아챘습니다. 그리고 이사회 멤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이사회에 합류시켜 자신의 동료 겸 조언자로 삼았지요. 이후 버핏은 캐서린의 워싱턴 포스트가 기업인수 등 자본투자와 관련된 결정을 할 때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언론으로서의 명성과 경영성과 측면 모두에서 워싱턴 포스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캐서린 그레이엄의 뒤에는 이같은 워런 버핏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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