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 신문에 칼럼으로 쓴 글입니다.)
대입 수시제도와 의원 비례대표제.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명분'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제도에 뚫려 있는 구멍을 악용하지 않는 선진적인 문화, 악용을 꿈꾸지 못하게 검증하고 처벌하는 사회가 아니라면, 이런 제도를 확대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공정성을 훼손하고 사회의 도덕성을 타락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서로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 두 제도는 지금 기묘하게 얽혀있다. 수시제도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 가족이 받고 있는 여러 혐의들 중 하나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조 전 장관 문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포함된 선거법 개정안의 통과를 원하는 정의당과 이어진다. 선거법 개정이 의석확보에 유리한 정의당은 조국 후보자를 '부적격 명단'에 올리지 않는 결정을 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수시제도는 지금 조국 사태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있고, 비례대표제는 연말로 가면서 논란의 중심에 등장할 것이다.
사실 수시제도는 예전부터 공정성에 논란이 많았다. '왜 떨어졌는지도 모르고, 왜 붙었는지도 모르는 제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선발 기준이 불분명해 문제가 되어 왔다.
그해 여름이 기억난다. 필자도 몇해 전 수험생 학부모였다. 아이가 고3 여름방학이 되어 수시 원서를 쓰기 전까지는 '현실'을 잘 몰랐다. 생업에 바쁜 대다수 학부모들처럼, 대학은 아이의 실력과 노력만큼 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서울대를 방문해 신청을 하면 누구나 입학사정관을 만나 질문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입학처를 찾아갔다. 검증을 하고는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던 자기소개서와 스펙 입증 자료들에 대해 물었다.
"자소서를 '자소설'이라고들 부릅니다. 내용을 부풀려서 기재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판별하는지요?"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입학사정관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읽어보면 압니다."
"입시컨설팅 회사가 돈을 받고 스펙 입증 자료를 만들어 주고 자소서를 써주는 경우가 있던데, 그건 어떻게 판별합니까?"
그는 이번에도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것도 읽어보면 바로 압니다."
더 이상 질문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때 느꼈던 수시 제도에 대한 '의심'과 '심증'은 이번 조국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 보도를 보며 '확신'으로, 그리고 '절망'으로 바뀌었다. 보도에 따르면 집과 연구실 PC로 인턴활동 증명서, 대학총장 표창장을 '제작'해 입시에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니, 이미 논문게재가 취소된 'SCIE급 의학논문 제1저자 파문'은 별 것 아니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그래서인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요즘 자신의 자녀들을 떠올리며 '자책'하고 있다. "세상 헛 산 것 같다." "어리석었다." "나는 왜 뻔뻔하지 못할까..." "도덕심이 뭔지 회의가 든다."
속도위반 범칙금 고지서만 받아도 놀라 가슴이 철렁한 일반 시민들이 그런 말을 한다. 이렇게 한 사회의 도덕은 무너져 간다.
이제 연말로 갈수록 선거법 개정 문제가 뜨거운 논란이 될 것이다. 비례대표 의원 수 확대를 골자로 하고 있는 개정안은 '잠재력'을 보고 뽑는다는 수시제도처럼, 명분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다. 사표를 방지하고 전문성 있는 좋은 의원들을 선출한다고 한다. 현실도 그러한가.
지금 수시 합격 여부는 무엇이 결정하고 있는가. 학생의 잠재력인가, 아니면 자소서를 과장하고, 나아가 '위조'하는 일부 학부모들의 비도덕인가. 그럼 비례대표 의원은 어떤가. 그의 전문성과 품성인가, 아니면 당 지도부의 자의적인 간택인가. 이제는 '뒷거래'는 없는가.
'공정성'을 생각한다면, '국민의 불신'을 무겁게 여긴다면, 수시 비중은 현재의 70~80%에서 20~30%로 대폭 줄여야 한다. 비례대표 의원 숫자도 47명에서 75명으로 증원할 게 아니라 반대로 지금보다 줄이는 게 맞다.
한계는 있지만, 그나마 정시 합격생은 수능성적이 결정하고, 지역구 의원은 유권자가 선택한다. 수시와 비례대표제는 '보'의 기능에 머물러야 한다.
국민의 정치 불신을 생각하면 비례대표만이 아니라 300명이라는 국회의원 숫자도 줄여야할 상황인데, 대한민국은 지금 거꾸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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