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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와 얘기할수록 '성실한 직업인'이란 인상이 짙어졌다. 시신을 앞에 두고 밥 먹는 일도 그에겐 일상이다. 일하는 데 체력 달리는 게 싫어서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세 시간씩 산을 오른다고 했다. 

이 교수는 자신의 일을 사진기자, 탐정, 형사 등에 비유했다. 하나같이 거친 직업이다.

 

 

나는 지금 '나의 일'을 어떤 자세로 하고 있는지, 가끔 생각해보곤 합니다. 그것이 보람, 만족, 행복 등 많은 것들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일을 대하는 자세는 몇 가지가 있지요.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며 마지못해 일을 하는 경우부터, 자신에게 부여된 '소명'으로 생각하며 기꺼이 하는 경우까지. 경제노트 가족 여러분은 어느쪽이신지요.

 

한국의 1세대 법의학자인 이정빈(71) 단국대 석좌교수를 인터뷰한 기사를 읽다가 눈길이 가는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국내에서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늘 카메라 앞에 섰던 대표적인 법의학자입니다. 여대생 박상은양 피살 사건(1981년), 연세대 이한열군 사망 사건(1987년), 치과의사 모녀 살해 사건(1995년), 듀스 멤버 김성재씨 사망 사건(1995년), 연쇄 살인범 강호순 사건(2009년), 만삭 의사 아내 사망 사건(2011년)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합니다.

 

예상했던대로 법의학을 하는 의사는 다른 개업의들보다는 돈을 잘 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의 말입니다. "작년에 광주에 증언하러 갔는데 일당 6만9000원을 주더라고요. KTX 왕복 값도 안 나오죠. 이게 현실이에요. 돈 적은데 누가 하겠다고 하겠어요?"

그래서 그런지 그가 졸업한 서울대 법의학교실도 인기가 없었습니다. 동기생은커녕 5년 후에야 후배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기사가 "개업한 동기들과 비교가 됐겠어요"라고 질문을 던지자, 이교수가 이렇게 말했더군요.

 

"내가 이제 막 일흔 넘었는데 일 그만둔 동기들이 많습니다. 다들 그렇게 재밌게 일했던 것 같진 않았어요. 나는 지금도 일이 너무 좋아요. 어느 날 한 기자가 '사명감 때문에 일하는 거냐'고 물었어요. 사명감 가지고 하면 그때부터 머리가 아파요. 재밌으면 머리가 안 아픕니다. 사건이 안 풀려도 '나는 할 만큼 했다. 머리가 나빠선지 모르겠지만 나를 다 바쳤다'라고 생각합니다."

 

이정빈 교수는 자신의 일을 '너무 좋아서', '재미있어서' 한다고 했습니다. '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