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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규칙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 & '웹월드 모바일'_4)마케팅전략(4.28)
입력 2017-04-05 오전 9: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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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역사 서술에서 주역으로 등장하는 사회제도들, 즉 정치조직·대기업·종교 등은 사회 질서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어느 정도 설명해준다. 그러나 미래에 닥칠 현상을 예견하려면,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게 낫다. 사람들이 지금 어떤 취미를 즐기는지, 새로운 놀이방법을 창안해내는 하부 문화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는 게 낫다.
 
 
역사책은 재미있다. 사람들 이야기라서 그렇고, 스토리가 있어서 그렇다. 읽다가 감동을 받거나 교훈까지 얻는다면 금상첨화다. 스티븐 존슨의 『원더랜드』는 일종의 역사책이다. 이 책은 이런 역사책이 갖는 장점에 더해 시각이 새롭고 신선하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
 
<미디어 혁신가이자 과학 저술가인 저자가 쓴 책>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저자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순서겠다. 스티븐 존슨(Steven Berlin Johnson)은 과학 저술가이자 미디어 이론가이다. 1968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50세인 작가는 브라운대에서 기호학을,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단순한 작가는 아니다. 혁신적인 온라인 미디어인 ‘피드(FEED)’와 ‘플라스틱닷컴(Plastic.com)’을 만든 인물인 동시에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 『가디언』 같은 유력 언론에서 글을 쓰면서 과학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는 칼럼니스트이다.
존슨은 이 책 이전에도 이미 흥미로운 책을 여러 권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특히 이 책과 연관이 있는 2014년의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How We Got to Now : Six Innovations That Made the Modern World)』, 2010년의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Where Good Ideas Come From : The Natural History of Innovation)』는 국내에 번역본으로 소개되어 있다. 저자에 관심 있다면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이 두 책의 원제목과 부제를 일부러 영어로도 소개했다. 영문 부제에 공통점이 하나 보이지 않는가? 바로 ‘혁신’(Innovation)이다. 전작 두 편에서 과학과 기술 분야의 풍부한 사례들을 활용해 ‘혁신의 역사’를 정리했던 저자가 이번 책에서는 혁신의 기원, 혁신의 시작점에 주목했다. 일종의 혁신의 역사 ‘시리즈’를 낸 셈이다.
 
<혁신과 미래는 어디에 깃들어 있는가? 놀이와 즐거움!>
 
혁신은 어디에 깃들어 있는가? 무엇이 미래를 만드는가? 존슨은 이 책에서 ‘놀이와 즐거움’이라고 대답한다. 딱딱하고 골치 아픈 혁신이 ‘고작’ 놀이에 깃들어 있다고? 의외의 답 같지만, 그래서 흥미롭다. 존슨은 새로운 체험과 놀라움을 지향하는 인간 본능이 진보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놀이는 규칙을 깨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행위인데, 미래는 이처럼 통상적인 규율의 적용이 유보되는 공간에서 탄생한다는 것이다. 설득력이 있다. ‘놀이’와 ‘놀라움’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인간·역사·과학기술 그리고 미래를 흥미롭게 버무려놓은 것이 이 책 『원더랜드』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아는 역사는 대개 전쟁·조약·연설·선거·암살당한 지도자 등 굵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즐거움(Delight)’이라는 단어에서 역사적인 변화를 이끈 원동력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생존·권력·자유·부를 얻기 위한 투쟁. 역사는 대개 그러하다. 유희와 오락은 기껏해야 줄거리에 곁들인 부산물로 여길 뿐이다. 진보를 통해 얻은 이득, 자유와 풍요를 누리려는 목표를 달성한 뒤 문명이 누리는 덤으로 치부된다.”
이런 합리적 역사관에 익숙한 우리는 놀이와 즐거움이 인간의 문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간과한다고 존슨은 말한다. “장난감과 게임은 중요한 아이디어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다”라는, 책 앞부분에 소개된 찰스 임스의 말이 저자의 주장을 한 마디로 표현해준다. 즐거움의 본능이 역사와 문화를 바꿨다. 아무생각 없이 즐기는 오락거리로 폄하되는 장난과 유희가 미래를 예견하는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존슨은 ‘놀이의 역사’, 인간이 먹고살기 위해 날마다 되풀이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오로지 즐기기 위해 만들어낸 ‘소일거리에 대한 역사’, ‘우리가 재미로 하는 행위의 역사’를 책으로 정리해냈다.
목차를 보면 이 책이 얼마나 다양하고 흥미로운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다.
▲패션과 쇼핑_옥양목에 매료된 마님들 ▲음악_저절로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 ▲맛_후추난파선(The Pepper Wreck) ▲환영(幻影)_유령제조사 ▲게임_지주게임(The Landlord’s Game) ▲공공장소_놀이터에 이르기까지 재미있는 역사에 대해 궁금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인류를 탐험으로 이끈 달팽이와 자주색 염료>
 
이중 하나를 살펴보자. 티리언 퍼플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다. 달팽이와 자주색 염료, 그리고 혁신에 대한 스토리다. 4천여 년 전 에게해에서 발생한 미노아 문명. 그들은 뮤렉스 달팽이의 분비물로 아주 희귀한 색깔을 내는 염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주색(Purple)이다. 그 염료는 페니키아 남부의 티르라는 마을에서 생산되기 시작했고, 그 마을 이름을 따 ‘티리언 퍼플’로 불리게 됐다. 멋진 느낌을 주는 티리언 퍼플은 이후 오랫동안 지위와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자줏빛 염료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은 없다. 자줏빛 염료는 말라리아를 예방하지도 않고 몸에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하지도 않으며, 신생아 사망률을 낮추지도 않는다. 그저 멋져 보일 뿐이다.”
그런데 그 염료 1그램을 생산하려면 달팽이가 1만 마리 이상 필요했다. 선원들은 지중해 연안을 따라 뮤렉스 달팽이 서식지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지중해 연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서양의 거친 파도를 무릅쓰며 모험을 떠났다. 그들은 마침내 북아프리카 해안에서 바다달팽이의 대량 서식지를 발견했다.
멋진, 그래서 지위와 부의 상징이 되었던 자주색 염료. 그 염료의 원료였던 뮤렉스 달팽이를 찾아 4천년 전 페니키아인들은 지중해를 벗어났고 그것이 대서양 항로 개척으로 이어졌다. 뮤렉스 달팽이가 선원들을 망망대해로 나오도록 유혹했고 이것이 인류를 탐험으로, 종교의 자유나 군사적 정복을 찾아 나서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존슨은 한 분야에서 일어난 혁신이 얼핏 그 분야와 무관해 보이는 다른 여러 분야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커피 맛은 근대 언론 기관 탄생에 도움을 주었다. 우아하게 장식된 몇몇 포목점은 산업혁명을 촉발했다. 내연기관 제작이나 예방접종약의 대량생산법처럼, 중요한 문제를 풀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한 이들 덕분에 우리가 오늘날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있다. 그러나 한편, 우리가 누리는 현대 문명의 상당 부분은 인간이 또 다른 종류의 활동을 한 끝에 탄생했다. 마술·장난감·게임·빈둥거리며 하는 소일거리와 같은 활동이다.”
위의 자주색 염료와 달팽이 스토리를 보고 나면, 아마도 앞에서 언급한 커피와 근대 언론 기관의 탄생, 우아하게 장식된 포목점과 산업혁명이 도대체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마술·장난감·게임도 마찬가지다. 직접 읽어보면 좋겠다.
 
<미래는 놀이에서 탄생>
 
“혁신, 그리고 그 혁신이 만드는 미래는 놀이에서 탄생한다.” 존슨은 그렇게 혁신의 역사를 해석했다. 규칙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놀이가 수많은 혁신을 낳는 온상이 된다는 말이다.
“전통적인 역사 서술에서 주역으로 등장하는 사회제도들, 즉 정치조직·대기업·종교 등은 사회 질서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어느 정도 설명해준다. 그러나 미래에 닥칠 현상을 예견하려면,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게 낫다. 사람들이 지금 어떤 취미를 즐기는지, 새로운 놀이방법을 창안해내는 하부 문화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는 게 낫다.”
통상적인 규율의 적용이 유보되는 공간. 누구나 즉흥적으로·뜻밖에·어마어마하게 창의적인 놀이를 마음껏 시도해볼 수 있는 경이로움과 유희의 공간에서 미래는 펼쳐진다. 사람들이 가장 신바람 나게 노는 곳에서 미래가 탄생한다. 혁신과 미래의 기원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것이다.
물론 이 책에 대해서 몇 가지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 논리적인 비약이 보인다든지, 결과들을 사후적으로 끼워 맞춘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런 면이 다소 있다 하더라도, 이 책은 새로운 시각에서 혁신의 역사를 바라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 과학과 기술,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한 풍부한 지식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은 덤이다.
 
<회사생활에서, 삶에서 ‘혁신적인 무언가’를 찾고 싶다면>
 
혁신과 미래는 놀이와 즐거움에 깃들어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가 회사생활에서, 나아가 자신의 삶에서 ‘혁신적인 무언가’를 찾고 싶다면, 좋아하는 놀이를 할 때처럼 생각을 말랑말랑하게 할 필요가 있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규칙이 있다면, 그걸 거부해볼 필요도 있다. 새로움과 혁신은 그런 시도에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게 하나 더 있다. 그건 ‘출발’이라는 것. 그 시작을 ‘완성’으로 마무리하려면 결국에는 규율이 더해져야한다는 것을. 즐거움과 놀라움·놀이·말랑말랑한 생각에서 시작된 혁신의 싹을 의미 있는 ‘결과물’로 완성하는 것은 지루할 수도 있는 꾸준함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은행연합회가 발행하는 월간 '금융' 4월호에 실린 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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