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실수를 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좋다. 우리는 종종 무릎이 까지고 다쳤던 어린 시절에 가장 많이 배웠다. 그때는 보호하고 싶은 자아가 아직 형성되기 전이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가 자아를 인식하게 되면 실수는 우리의 한계를 일깨우는 불청객이 된다. 실수 때문에 자아에 상처를 입게 되면 어린 시절에 가졌던 호기심, 배우려는 충동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된다.
태어나면서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권리라고 할 수 있는 배움에 대한 지향, 폭넓은 마인드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을 실수의 산물로 이해하고, 이 같은 이해로부터 이익을 얻으려고 시도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182쪽)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실수의 가치'를 망각하며 지냅니다. '효율'을 위해 "실수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러면서 저자의 표현처럼 배움에 시간을 덜 쓰고, 성취하고 수확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며 지냅니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 실수에 상처를 입고 실수를 두려워하게 되면서, 우리가 어린 시절 갖고 있었던 호기심, 배움에 대한 욕망을 잃어버립니다. 실수는 줄일 수 있겠지만, '배움'도 줄어들고 의미 있는 '성장'도 어려워집니다.
의미 없는 옮음보다 의미 있는 틀림이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지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볼프강 파울리는 한 지극히 평범한 이론을 다음과 같은 말로 깔아뭉갰습니다.
"그것은 심지어 틀리지조차 않았어."
내가 실수를 두려워하면서 호기심을 잃어버린채, '심지어 틀리지조차 않은' 너무도 평범한 일들만 조심조심 행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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