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2015년 4월말 현재 7000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생겨났다. 반갑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겨나는 협동조합의 대부분이 경제적 동인(動因)으로 생겨났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들 협동조합은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겪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왜 회사방식을 따르지 않고 굳이 협동조합을 하느냐?"는 물음이다.
이 자문(自問)에 답하기 위해서는 협동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인간은 왜 협동할까? 최근 진화의 원리로 변이와 자연선택 이외에 '자연스러운 협동' 을 인류 진화의 원동력으로 주장한 미국 하버드대학의 노박(M.A. Nowak) 교수는 "협동이란 이기적인 복제자들이 서로 돕기 위해 그들 자신의 번식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하면서 경쟁을 함축하고 있는 자연선택에 협동의 메커니즘, 즉 혈연선택, 직접상호성, 간접상호성, 네트워크 상호성, 집단선택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인류는 이처럼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이 중 혈연선택은 친족 간 유전자 공유도, 즉 근친도가 높을수록 이타적 행위가 일어나는데, 이는 자신을 포함하여 자신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유기체의 유전자가 다음세대로 전달될 가능성을 높이는 행동이나 효과가 종합적으로 고려된 이기적 유전자의 결과이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부분은 '상호성'이다. '인간은 이타적인가 아니면 이기적인가?'의 질문에 노박 교수는 '인간은 상호 호혜적이다'라고 답한다. 이는 서로 도와 편익을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즉, 서로 '연대'하고, 주고받을 때는 '평등'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그 조직구조나 사회적 네트워크는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또한 노박 교수는 협동은 의무적일 때보다 자발적일 때 강력한 움직임을 가진다고 역설했다. 이 '자발적'이라는 말은 협동조합의 정의인 '자발적으로 결합한 자율적인 결사체'에서도 보듯 스스로 돕겠다는 '자조'의 정신에서 출발한다. 그렇게 해야만 행위의 결과나 결정에 대한 '자기책임'을 가질 수 있다. 이처럼 협동조합은 자조, 자기책임, 민주주의, 평등, 공정, 연대의 가치를 밑바탕으로 협동을 구현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올바른 협동조합을 구현하기 위해 협동조합 구성원은 단순히 힘을 모아 서로 돕는 '협력의 단계'를 넘어 '협동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협동이란 서로 마음과 힘을 합한다는 뜻이다. 힘을 합하기 위해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협동조합 구성원은 정직(正直), 즉 거짓·허식이 없이 마음이 바르고 곧아야 하고, 구성원 간에는 공개(Openness), 즉 스스로 열린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해야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회적 책임도 실천할 수 있다.
정리하면 협동조합 구성원은 정직, 공개, 타인에 대한 배려, 사회적 책임의 가치를 가슴에 지녀야 한다.
조직의 생존은 그 조직이 어떤 가치를 갖는지, 혹은 핵심가치를 지니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지에 따라 그 조직의 생존 가능성이 달라진다. 뿐만 아니라 그 조직의 가치가 퍼져나갈지 아니면 사라질지가 결정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협동조합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협동조합이 희귀한 이유가 협동이 무엇이고, 협동조합과 그 구성원이 지녀야할 가치들이 간과되거나 희석되었기 때문은 아닌지 곰곰이 되짚어보아야 할 때이다.